반응형
한국사 검정능력시험 : 고려의 대외 관계와 외교 전략 요약 12강
(최태성 강의 [심화별개념8] 12강 고려(외교) 요약)
1. 거란(요)과의 관계 및 전쟁
- 1차 거란 침입: 거란은 고려에 영토(서경 등) 반환을 요구하며 침입했으나, 서희가 외교 담판을 통해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둠. 거란의 목적은 고려가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게 하는 것이었음.
- 2차 거란 침입: 강조의 변(쿠데타)을 명분으로 재침. 양규의 활약으로 방어에 성공. 고려는 거란과의 우호를 약속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 다시 침입을 유발함.
- 3차 거란 침입: 군사적 대결로 귀주대첩에서 강감찬이 대승, 이후 거란과의 긴장 완화.
- 방어체제: 광군(특수부대) 조직, 천리장성 축조(거란·여진 방어), 개경 나성 축조, 초조대장경 조판(불심으로 단결).
2. 여진과의 관계
- 여진의 성장과 침입: 12세기 여진의 국경 침입이 심화됨. 윤관이 별무반(신기군·신보군·항마군)이라는 특수부대를 조직해 기병전력 강화, 동북 9성 확보(후에 반환).
- 금나라 사대: 여진이 금을 세우고 사대를 요구하자 문벌귀족(이자겸, 김부식 등)이 수용. 이에 반발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됨.
3. 몽골(원)과의 관계
- 몽골의 침입: 13세기 몽골의 침입에 맞서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천도(최우 주도), 육지 백성들은 피해 심각. 몽골군이 초조대장경, 황룡사 9층 목탑 등 소실시킴.
- 항전: 김윤후(처인성 전투, 충주성 전투 등), 삼별초의 항쟁(강화도→진도→제주도).
- 팔만대장경 조판: 불심으로 다시 단결, 팔만대장경 제작.
- 원 간섭기: 영토 축소(쌍성총관부, 탐라총관부 등 설치), 왕실이 원 황실과 혼인(부마국), 관제 개편(이성육부→중서문하성·사사), 내정간섭(다루가치 파견), 정동행성 설치(일본 원정 기구), 공녀 요구, 몽골풍(변발·호복 등) 유행, 권문세족 득세1.
4. 반원 자주 정책과 고려의 변화
- 공민왕의 개혁: 쌍성총관부 무력 수복, 정동행성 이문소·몽골풍 폐지, 권문세족(기철 등) 숙청, 전민변정도감 설치(대농장 몰수, 양민 회복), 왕권 강화 및 국가 재정 확충.
- 신진사대부 성장: 공민왕 개혁에 참여한 신진사대부가 성장, 이후 조선 건국 주도.
5. 원명 교체기와 신흥 무인 세력
- 홍건적·왜구 침입: 14세기 홍건적·왜구의 침입으로 백성 피해 심각. 이 과정에서 최영(홍산대첩), 최무선(진포대첩), 이성계(황산대첩) 등 신흥무인세력 성장.
- 요동 정벌과 위화도 회군: 명의 천령위 설치 요구에 맞서 요동정벌 추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 장악, 과전법 시행, 조선 건국으로 이어짐.
핵심 키워드 정리
시기 | 외교/전쟁 상대 | 주요 사건 및 대응 | 인물/제도 |
10~11세기 | 거란(요) | 1~3차 침입, 귀주대첩, 강동6주 확보 | 서희, 강감찬, 광군, 천리장성 |
12세기 | 여진/금 | 별무반 창설, 동북9성, 금 사대 | 윤관, 이자겸, 김부식, 묘청 |
13~14세기 | 몽골(원) | 몽골침입, 강화도 천도, 삼별초 항쟁 | 최우, 김윤후, 삼별초, 팔만대장경 |
원 간섭기 | 원 | 부마국, 영토 축소, 관제 개편 | 권문세족, 기철, 기황후 |
14세기 말 | 명/왜구/홍건적 | 신흥무인세력 성장, 위화도 회군 | 최영, 최무선, 이성계, 과전법 |
결론
고려는 거란, 여진, 몽골 등 강대국의 침입에 맞서 외교와 군사, 불심, 제도 개혁 등 다양한 전략으로 대응했으며, 각 시기별로 특색 있는 인물과 제도를 통해 국가의 존립과 자주성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외교적 지혜(서희), 군사적 대응(강감찬, 윤관, 김윤후, 이성계), 제도·문화적 대응(광군, 별무반, 팔만대장경, 전민변정도감) 등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조선 건국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한국사 검정능력시험 : 고려의 경제와 사회 핵심 정리 13강
1. 토지 제도와 수취 제도
- 토지의 권리
- 고려의 토지는 수조권(세금을 거둘 권리)와 소유권이 중첩되어 있음
- 수조권 중심 제도
- 역분전(태조) : 개국 공신에게 공로에 따라 토지를 나누어 준 제도
- 전시과(경종~문종) : 관리에게 관직과 인품(시정전시과) 또는 관직(개정전시과, 경정전시과)에 따라 토지를 지급.
- 시정전시과(경종) : 전,현직 관리, 인품도 반영
- 개정전시과(목종) : 전,현직 관리, 인품 방영 안함
- 경정전시과(문종) :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 토지 부족 때문.
- 전지 : 농지, 시지 : 임야(땔감용)
- 소유권 중심 제도
- 민전 : 백성이 소유하는 토지로, 조선까지 이어짐. 민전 위에 전시과의 수조권이 중첩 설정됨.
- 수취 제도
- 양안 : 토지 대장(조세, 공납의 근거).
- 호적: 인구 대장(역, 즉 노동력 동원의 근거)
2. 경제 활동
농업
- 논농사: 고려 후기 남부 일부에서 이앙법(모내기법) 시행. 전국적 확산은 조선 후기.
- 농서: 원나라에서 들여온 《농상집요》 활용.
- 밭농사: 2년 3작의 윤작법(콩 등으로 지력 회복).
- 목화: 원나라에서 문익점이 들여와 재배 시작.
상업
- 국제 무역항: 벽란도(예성강 하구, 개경 인근)에서 아라비아 상인 등과 활발한 무역.
- 화폐:
- 활구(은병) : 고액 은화, 실물가치.
- 건원중보(성종): 철전, 해동통보(숙종) 등 화폐 발행 시도 (주전도감 설치) → 실물경제(쌀, 옷감 등) 위주, 화폐 유통을 실패.
- 상업 관리
- 관영 상점 : 서적점, 다점 (차 판매점), 시전(개경)
- 경시서 : 시전 등 상행위 감독.
- 상평창 : 물가 조절 기구.
수공업
- 관영 수공업: 국가 주도.
- 소수공업: 특수행정구역 ‘소’에서 집단적 수공업.
- 민영·사원 수공업: 점차 확대.
3. 사회 구조와 신분제
신분 | 주요 집단 및 특징 |
지배층 | 귀족(호족→문벌귀족→무신→권문세족) |
중류층 | 하급관리(잡류, 남반, 군반), 향리(속군·속현 실무 담당) |
양민 | 백정(일반 농민, 인구 다수), 향·부곡(농업), 소(수공업) |
천민 | 노비(매매·상속·증여 가능, 일천즉천의 원칙) |
- 백정: 고려시대에는 일반 농민(조선시대의 천민 백정과 다름).
- 향·부곡·소민: 특수행정구역 거주, 세금 부담·거주 이전의 자유 제한 등 차별.
- 노비: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일천즉천).
4. 농민 조직과 사회 제도
- 향도:
- 전기: 불교 신앙 조직(매향 활동).
- 후기: 마을 공동 조직(상장제례 등), 조선까지 존속.
- 구휼 제도:
- 흑창(태조) → 의창(성종) : 춘대추납(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갚는 제도)
- 제위보: 기금의 이자로 빈민 구제
- 의료기관 : 동,서 대비원 , 혜민국, 구제도감, 구급도감 등.
5. 법률과 여성의 지위
- 법률: 당률(당나라 법)도 있었으나, 관습법(마을 관행)이 주로 적용. 형벌로 태·장·도·유·사(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등.
- 여성의 지위:
- 균분 상속 : 남녀 구분 없이 상속
- 윤행봉사 : 딸도 제사 가능
- 외가 음서: 외가 쪽도 음서 해택
- 호적: 나이순 기재, 남녀 구분 적음
- 재가(재혼) : 자유로움
결론
고려의 경제는 토지 제도(수조권과 소유권의 중첩), 활발한 농업·상업·수공업, 그리고 다양한 구휼·사회제도로 특징지어집니다. 사회는 엄격한 신분제 구조를 가졌으나, 여성의 지위는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고, 농민 조직인 향도 등 자치적 공동체도 발전했습니다. 이러한 제도와 구조는 조선시대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사 검정능력시험 : 고려의 문화(1)_유학, 역사서, 불교, 풍수지리 14강
유학의 발전과 교육 제도
- 국가 주도의 교육
- 중앙에는 국자감이 설치되어 유학(문과)와 기술학부(이과)를 함께 운영. 이는 조선의 성균관과 달리 기술학부가 존재했던 점에서 개방점임.
- 지방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지역 교육을 담당함.
- 과거제
- 광종 때 도입. 실력에 따라 신분 상승이 가능해져, 신분제적 한계를 일부 극복.
- 과거 시험은 경전 해석(경과), 논술(제술과), 실무(잡과) 등으로 나뉨. 무과(무인 시험)은 따로 새행되지 않음. 승려를 위한 승과도 존재.
- 사학 12도
- 국립 교육 외에 사립 명문학교(대표 : 최충의 9재학당)이 등장, 과거 합격에 큰 영향력을 미침.
- 관학(국립학교) 진흥책으로 장학재단(양연고) 설립, 우수 교원 초빙 등 시도 했으나 사학의 인기를 넘지 못함.
- 성리학의 수용
- 원 간섭기 이후 아향이 성리학을 소개, 신진사대부(이색, 이제현 등)가 이를 수용해 조선 건국의 사상적 기반 마련.
역사서의 편찬과 특징
역사서 | 저자 | 시기/특징 | 관점/의의 |
삼국사기 | 김부식 | 문벌귀족기, 기전체 | 신라 계승, 유교적·합리적 서술 |
삼국유사 | 일연 | 원 간섭기, 기사본말체 | 고구려·단군 강조, 설화·불교 중심 |
동명왕편 | 이규보 | 무신정권기, 서사시 | 고구려 계승 의식 부각 |
제왕운기 | 이승휴 | 원 간섭기, 운문체 | 단군 신화 강조, 민족적 자긍심 |
사략 | 이제현 | 고려 말, 신진사대부 | 성리학적 관점, 조선 사관 영향 |
- 삼국사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역사서. 신라 중심, 유교적 합리주의.
- 삼국유사: 설화·전설 등 포괄, 고구려·단군 신화 등 민족적 요소 강조. “버려진 이야기”의 가치 재발견.
- 동명왕편: 고구려 시조 주몽의 건국 서사시.
- 제왕운기: 단군 신화, 우리 민족의 기원을 강조.
- 사략: 성리학적 역사관, 조선 사관의 토대.
불교의 발전과 승려
- 불교의 국가적 위상
- 태조 왕건이 훈요 10조에서 불교 중시(연등회 , 팔관회 강조)
- 광종 때 균열의 보현십원가 등 불교 향가 창작.
- 불교 행사
- 연등회, 부처님 오신 날 행사, 국가적 규모
- 팔관회, 도교적, 민간신앙적 요소가 결합된 국가 제사
- 성종 때 유학자 최승로의 건의로 행사가 축소되기도 함.
- 교종과 선종의 통합 노력
- 의천(대각국사) : 국청사에서 천태종 창시, 교종 중심의 교선통합(교관겸수) 시도. 대장경(교장)정리, 화폐 유통에도 관심.
- 진울(보조국사) : 송광사(수선사) 결사 주도 선종 중심의 선교통합(정혜쌍수, 도노점수) 강조. 제자 혜심은 유불일치설 주장.
- 요세 : 법화신앙 중시 , 백련사 결사 주도
- 결사 운동
- 승려들이 불교의 타락을 막고자 공동체 수행(결사)을 강조. 대표적으로 수선사 결사(진울), 백련사 결사(요세)가 있음.
풍수지리와 도교
- 풍수지리 사상
- 호족,지방세력의 기반, 왕건의 훈요 10조에도 반영
- 서경(평양) 중시, 3경(개경,서경,동경/남경) 체제 운영
- 남경(서울) 길지설 등 한양 천도의 사상적 배경 제공.
- 도교적 요소
- 팔관회 등 국가 제사에 도교 민간 신앙적 성격이 결합
핵심 요약
- 고려 문화는 유교와 불교, 풍수지리, 도교 등이 융합된 독특한 성격을 지님.
- 교육과 과거제의 확대, 사학의 흥기, 성리학의 수용 등 지식인의 성장 기반 마련.
- 역사서 편찬에서 유교적 합리주의와 불교·민족적 전통이 공존.
- 불교는 국가적 행사와 교종·선종 통합운동, 결사 운동 등으로 발전.
- 풍수지리와 도교는 정치·사회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됨.
이러한 문화적 토대는 조선 건국과 이후 한국사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