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나사는 새로운 태양계 탐사 프로그램 ‘뉴 프론티어스(New Frontiers)’를 공식 출범시킵니다. 이 프로그램은 중간 예산으로 과학적으로 중요한 태양계 천체를 탐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 첫 번째 탐사선이 바로 명왕성과 카이퍼 벨트를 향한 ‘뉴호라이즌스(New Horizons)’였습니다.
왜 명왕성이었을까요? 인류는 이미 다른 행성은 모두 탐사했지만, 명왕성은 아직 도달한 적이 없는 마지막 행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명왕성은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미지의 세계였고, 우리는 그 비밀을 풀어낼 열쇠가 필요했습니다.
명왕성의 애매한 지위와 과학적 논쟁
1930년 발견된 명왕성은 오랫동안 태양계의 9번째 행성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크기가 작고, 위성 카론과의 특이한 관계 때문에 천문학계에서는 행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늘어났습니다. 이후 명왕성보다 큰 소행성들이 잇달아 발견되며 결국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분류됩니다.
탐사 시기를 앞당겨야 했던 이유
첫 번째 이유는 거리였습니다. 명왕성은 평균 60억 km나 떨어져 있으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명왕성의 대기 조건이었습니다. 멀어질수록 대기가 얼어붙어 관측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었죠. 세 번째 이유는 탐사의 기회였습니다. 명왕성과 위성 카론은 물론 카이퍼 벨트까지 이어지는 절호의 탐사 조건이었기에 놓칠 수 없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빠른 탐사선의 등장
나사는 뉴호라이즌스의 무게를 478kg으로 줄이고, 강력한 발사체 아틀라스 V를 이용해 시속 58,500km로 지구를 탈출시켰습니다. 이는 현재까지도 가장 빠른 지구 탈출 속도 기록입니다. 탐사선에는 명왕성 발견자 클라이드 톰보의 유골도 함께 실렸습니다.
스윙바이: 목성을 경유한 전략
목성의 중력을 이용한 스윙바이로 뉴호라이즌스는 속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단순히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목성에서 얻은 중력 도움으로 속도를 시속 14,400km 이상 끌어올렸고, 3년이나 일찍 명왕성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성의 오로라, 번개, 대기, 위성들의 활동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보너스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명왕성, 그 신비로운 세계
2015년 7월, 뉴호라이즌스는 명왕성에서 불과 12,500km까지 접근해 고해상도 이미지를 촬영했습니다. 명왕성은 죽은 얼음덩어리가 아니었습니다. 높은 산, 젊은 지형, 얼음 화산, 질소 기반 대기 등 지질활동이 살아 있는 복합적인 천체였습니다.
하트 모양의 '스푸트니크 평원', 푸르른 대기, 톨린 화합물 등은 명왕성의 정체성과 태양계 형성 이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습니다.
아로코트, 그리고 성간 공간으로
명왕성 탐사 이후 뉴호라이즌스는 카이퍼 벨트에 위치한 소천체 아로코트를 탐사합니다. 아로코트는 두 개의 천체가 천천히 충돌해 합쳐진 특이한 형태로, 우주의 형성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였습니다.
그 이후 탐사 타겟을 추가로 발견하지 못하며, 2021년 4월 30일 천체 탐사 임무는 공식 종료됩니다. 현재 뉴호라이즌스는 태양계 외곽을 비행하며, 성간 우주 환경에 대한 탐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눈, 뉴호라이즌스
뉴호라이즌스는 단지 명왕성 탐사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시야를 태양계 너머까지 확장시킨 역사적인 탐사선입니다. 앞으로도 그 여정은 계속될 것입니다.